중국계 사모펀드의 매그나칩반도체 인수가 미국 정부의 제동으로 결국 무산됐습니다.

 

지난 15일 매그나칩은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에 제출했던 중국계 사모펀드 와이즈로드캐피털과의 합병 계약을 철회한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매그나칩은 지난 3월 자사 주식 전량을 와이즈로드캐피털에 1조5800억원(약 14억달러)에 매각한다고 발표했으나 결국 미국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매그나칩은 "양측이 수개월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CFIUS의 합병 승인을 얻지 못했다"면서 "매그나칩은 앞으로도 독립적인 상장회사로서 주주가치 창출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습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용 구동 반도체(DDI)와 차량용 반도체 등을 만드는 매그나칩은 옛 하이닉스반도체(SK하이닉스)의 시스템반도체 사업이 분리돼 2004년 설립된 업체인데요. DDI는 디스플레이 장치를 활용하는 대부분의 정보기술(IT) 기기와 자동차 등에 탑재되기 시작하면서 핵심 반도체 부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OLED 패널 DDI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라 있는 업체입니다. 보유하거나 출원 중인 특하만 12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가 이번 매각에 제동을 건 이유는 무엇일까요. 매그나칩은 연구개발(R&D) 시설과 생산시설이 한국에 있고 임직원도 대부분 한국인인 업체입니다. 그러나 본사는 미국에 있으며 미국 씨티그룹에 인수된 후 2011년에는 뉴욕 증시에까지 상장돼 있는 상태입니다.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이던 지난 8월 매그나칩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미국 CFIUS로부터 "매그나칩 매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미국 국가안보상 위험성을 확인했다"는 내용의 서한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CFIUS는 "이러한 위험 요소를 상쇄할 만한 대안이 없다"면서 "조사 기간 내에 국가안보 리스크에 대한 판단을 바꿀 만한 새로운 정보가 없다면 대통령에게 이 같은 내용이 전달될 것"이라고 통보했다고 합니다.

 

그간 미국 반도체 회사의 M&A 거래에 번번이 반대해온 중국에 미국이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선 모양새인데요. 반도체 패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양국의 전장이 M&A 시장까지 확대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매그나칩 매각 무산으로 인해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정부는 이미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AMAT)의 일본 고쿠사이일렉트릭 인수, 미국 퀄컴의 네덜란드 NXP 인수 등 반도체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는 M&A 거래를 연달아 지연시키며 최종 무산시키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중국은 별다른 이유 없이 합병 승인 절차 진행을 미루는 식으로 거래를 방해해왔습니다. 수개월에서 1년 넘게 작업을 미루면서 늘어나는 비용을 견디다 못한 인수 당사자들이 결국 계약을 무산시키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미국 정부 역시 매그나칩 거래 이전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견제해왔습니다. 올해 초 백악관은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인 ASML에 극자외선(EUV) 장비를 중국에 반입하지 말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EUV는 반도체 첨단 미세공정에 필수인 장비로 ASML이 독점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달에는 로이터통신이 미국 백악관 관계자 등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장쑤성 우시의 SK하이닉스 D램 반도체 공장에 네덜란드 ASML이 독점 생산하는 EUV 노광 장비 반입이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이 자국 군사력 증대를 목적으로 첨단 반도체 장비를 활용하려 하고 있고, 미국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동맹국의 핵심 기술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미국 반도체 기업인 인텔 역시 중국 청두 공장에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 생산을 확대하려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반대로 한발 물러난 바 있습니다.

 

이처럼 미·중 무역분쟁 격화와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로 반도체 확보가 국가안보 차원의 문제로 격상되면서 각국 정부는 특정 업체나 국가가 과도한 시장 지배력을 획득할 가능성이 있는 거래나 장비 반입에 대해 제동을 걸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사업 인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90억달러(약 10조1500억원)에 인텔 낸드 사업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나 1년이 넘도록 중국의 반독점 심사 승인이 나지 않고 있는데요. 경쟁당국 기업결합 승인 심사 대상 8개국 가운데 승인이 나지 않은 곳은 중국뿐입니다.

 

실제 당사자 간 계약이 체결된 M&A가 제3국의 반독점 심사기구 승인 거부로 인해 좌초되는 사례도 연달아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와 일본 반도체 기업 고쿠사이일렉트릭의 M&A인데요. 당시 중국 정부는 9개월 넘게 양사 M&A 거래 심사를 지연시키며 지난 3월 결국 거래를 무산시킨 바 있습니다. 업계에선 고쿠사이일렉트릭이 미국 업체로 넘어가면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에 따라 중국 업체들의 반도체 장비 조달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본 중국 정부가 거래를 지연시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의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SAMR)은 최근 주요 반도체 기업 인수 때마다 반대하면서 거래를 무산시키고 있습니다. 2018년엔 미국 통신 반도체 기업 퀄컴이 중국 정부의 승인 절차 지연으로 네덜란드 반도체 회사 NXP 인수를 취소한 바 있습니다.

 

이 밖에도 지난 3월 이탈리아 정부는 밀라노 소재 반도체 기업인 LPE가 중국 선전투자홀딩스에 매각되는 것에 기술 안보를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이처럼 각국 정부의 반대로 대규모 반도체 M&A 거래가 잇따라 무산되면서 국내 업체들의 M&A 전략에도 비상불이 켜졌습니다. 200조원이 넘는 유동성을 기반으로 3년 내에 적극적으로 M&A 기회를 모색하겠다고 밝힌 삼성전자는 대규모 M&A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동시에 각국 정부의 '인수 불허 리스크'도 커진 것입니다. 업계에선 당분간 반도체 분야의 국가 간 M&A 자체가 불가능해 질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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